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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흐려지면 그냥 안경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 글자도 못 읽고 가족 얼굴도 못 알아보는 분을 보고서야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이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일상을 무너뜨리는지 실감했습니다.
40세 이상 6명 중 1명꼴로 관련 변화가 시작된다는 통계를 접하고 나니,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조기발견이 전부인 이유 — 건성과 습성의 갈림길
황반변성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단순히 노안의 심한 버전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황반(macula)이란 망막의 정중앙에 자리한 작은 영역인데,
쉽게 말해 우리가 글씨를 읽거나 사람 얼굴을 알아볼 때 쓰는 '정밀 시력'을 전담하는 곳입니다.
이 부위의 세포층이 손상되기 시작하면 처음엔 아무 증상이 없다가,
어느 순간 사물이 휘어져 보이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휘어져 보이는 증상을 변형시(metamorphopsia)라고 합니다.
여기서 변형시란 직선이 물결처럼 굽어 보이거나 사물의 형태가 뒤틀려 보이는 시각 왜곡 현상으로,
황반에 문제가 생겼다는 초기 신호입니다. 제가 관련 내용을 찾아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버린다는 겁니다.
황반변성은 크게 건성과 습성으로 나뉩니다.
전체 환자의 90%를 차지하는 건성 황반변성은 진행이 느리고 증상이 거의 없지만,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습성 황반변성(wet AMD)은 완전히 다릅니다.
습성 황반변성이란 망막 아래에서 비정상적인 신생혈관이 자라나며 출혈과 삼출물을 일으키는 상태로,
방치하면 수개월 안에 시력을 크게 잃을 수 있습니다. 출처: 미국안과학회(AAO)
40세 이상 유병률이 약 6%라는 수치도 제겐 충격이었습니다.
100명 중 6명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황반에 변화가 생긴 상태라는 뜻이니까요.
문제는 그 대부분이 본인이 해당자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입니다.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습성 단계에서 처음 발견되면,
그때는 완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자가 확인 방법도 있습니다. 안과에서 나눠주는 암슬러 그리드(Amsler grid)라는 격자 무늬 판인데,
여기서 암슬러 그리드란 한쪽 눈씩 가운데 점을 바라보며
주변 선이 휘어 보이는지 체크하는 황반 자가 진단 도구입니다.
집에서도 간단히 해볼 수 있어서 저도 한번 해봤는데,
이걸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습관 하나만으로도 조기 발견 가능성을 꽤 높일 수 있다는 게 실감 났습니다.
- 황반변성의 주요 위험 인자: 고령(나이 자체가 가장 큰 위험 요인), 고혈압, 흡연, 장기적인 자외선 노출
- 건성 황반변성은 전체의 90% — 증상이 거의 없어 스스로 알아채기 어렵다
- 습성 황반변성은 전체의 10% — 방치 시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빠른 치료가 핵심
- 40세 이상이라면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1년에 한 번 망막 검사 권장
습성으로 넘어갔다면 — 항체주사치료가 달라진 것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눈에 주사를 놓는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배경이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원래 항암 치료를 연구하던 의사가 토끼 눈의 암세포를 관찰하다가,
암세포가 자라기 전에 먼저 혈관이 급격히 증식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혈관 증식을 일으키는 물질이 바로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VEGF)였고,
여기서 VEGF란 신생혈관을 만들어내도록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 물질로,
황반변성의 습성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VEGF를 차단하는 항체를 개발한 것이 지금 황반변성 치료의 근간인 항체주사치료(항VEGF 치료)입니다.
처음엔 항암제로 개발됐다가 눈에 적용되었고, 아바스틴(Avastin)이 그 초기 형태입니다.
아바스틴은 원래 대장암 치료용 약물인데, 임상에서 황반변성에도 효과를 보이면서 안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직 안과 적응증으로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라는 점은 알아두셔야 합니다. 출처: 미국 국립안연구소(NEI)
제가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 치료의 목표가 '과거에는 악화를 막는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5~10년 사이에 개발된 신약들은 이미 손상된 시력을 일부 되돌리는
데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질환에서
시력 회복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거니,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를 이어간다면
예전과는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비용 문제는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보험 급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주사 한 대에 80만~90만 원이고,
심한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맞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바이오시밀러, 즉 기존 항체 약물과 동등한 효능을 가지면서
가격이 낮은 복제 생물의약품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치료비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분이 많지 않아서,
진단 후 당황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예방 차원에서 루테인(lutein)과 지아잔틴(zeaxanthin) 영양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루테인이란 황반의 노란 색소를 구성하는 카로티노이드계 항산화 물질로,
황반을 자외선과 산화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 1,000명 이상을 10년 넘게 추적 관찰한 대규모 연구(AREDS2)에서 루테인과 지아잔틴을
섭취한 그룹이 황반변성 진행 위험을 약 25% 낮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만 흡연자라면 베타카로틴 성분이 함께 들어간 제품은 피하셔야 하고,
성분 조합을 꼼꼼히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큐에서 봤던 그 장면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가족의 얼굴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된 분이 "진작 검사를 받았더라면"이라고 했던 말.
제가 직접 겪어본 질환은 아니지만, 그 한 마디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황반변성은 증상이 없을 때 찾아가야 하는 병입니다. 흡연을 하고 계신다면 지금 당장 끊으시고,
혈압 관리와 선글라스 착용 같은 사소해 보이는 습관이 실제로는 큰 차이를 만듭니다.
40세가 넘으셨다면, 딱 한 가지만 기억하셔도 됩니다.
1년에 한 번, 안과에서 망막 검사를 받으세요. OCT 검사(빛간섭단층촬영)와 안저 촬영,
이 두 가지만으로도 황반변성뿐 아니라 녹내장과 당뇨 망막증까지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용도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나중에 주사를 맞는 비용과 잃어버린 시력을 생각하면,
지금의 검진이 훨씬 싼 선택입니다.